1962년생. 2017년 현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입니다.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이 고향으로 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군복무 이후에 부산에서 일하다 1985년 지프차 생산회사인 거화에 입사했다. 거화가 동화자동차공업으로 인수되고, 다시 동화가 쌍용그룹으로 인수되면서 쌍용자동차 직원이 됐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일하면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자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추진위원장을 맡아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2008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됐습니다.
2009년 1월 쌍용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그 해 4월 2646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한다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자,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5월 21일부터 77일간 평택공장 점거 파업을 주도했다. 농성이 끝난 후 구속돼서 2010년 2월 평택지원에서는 징역 4년을 선고했고, 항소했으나 8월 서울고등법원은 징역 3년을 선고했고, 상고했지만 2011년 1월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2012년 8월 만기 출소했다. 2012년 1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쌍용차 비정규직회 수석지부장과 함께 평택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며 171일간 고공농성을 벌였습니다.
2014년 12월 민주노총 사상 최초로 직선제로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5년 세월호 1주기 희생자 추모집회에서 도로를 무단 점거하고 청와대 행진을 시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7월 22일 1차 공판, 8월 16일 2차 공판에 모두 불출석하였고, 6월에는 노동절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었습니다.
3차 공판이 있던 10월 14일 재판 불출석 이유로 구인장이 발부됐고, 4차 공판이 있던 11월 11일에도 불출석하면서 같은날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12월 5일에는 5차 공판이 있었지만 조계사에 피신해 있던 상태라 역시 불출석했고, 결국 한상균의 신병이 확보될 때까지 재판은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모습을 보였고, 이후 종교시설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공권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조계사로 피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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